
제이앤엠뉴스 |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진정성’이라는 말을 한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수많은 어려움에도 자신의 작품을 지켜왔다는 이야기, 돈이나 성공보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까지.
그러한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음악을 향한 한 사람의 오랜 열정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음악산업의 현장에서 몇몇사례들을 지켜 보면 때때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음악에 대한 진정성은 자신의 작품을 대할 때만 존재해도 되는 것일까.
자신의 작품을 만들 때는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집요하게 고민하고, 연주 하나와 소리 하나에도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조금의 부족함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사람이 비용을 받고 타인의 작품을 맡으면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기본적인 연주 오류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결과물이 전달되기도 하고, 음악의 리듬과 다이내믹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끝났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작업자가 조금만 더 집중해서 모니터링했다면 발견할 수 있었던 문제를 의뢰인이 직접 찾아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그리고 의뢰인이 그 문제를 발견해 수정을 요청하기 시작하면 더욱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작업자의 검수 부족으로 발생한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과 의뢰인의 취향 변화에 따른 수정이 구분되지 않고, 교묘한 가스라이팅을 통해 심리적 혼란을 야기한다. 결국 처음 약속했던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해 문제를 계속 지적한 의뢰인이 어느 순간 ‘수정이 많은 사람’,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처음 합의했던 방향을 의뢰인이 계속 바꾸는 것과, 작업자가 처음부터 구현했어야 할 결과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이를 바로잡는 것은 과연 같은 ‘수정’일까.
자신이 작업한 곡의 의도가 실제 연주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거나, 명백하게 어긋난 연주가 그대로 포함되어 있거나, 곡 전체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악기들이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누구의 책임일까.?
물론 음악에는 정답이 없다. 같은 음악을 듣고도 서로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고, 연주와 편곡, 믹싱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창작자와 의뢰인의 취향이 다를 수도 있다. 그 결과물을 듣는 청자들도 다 다르게 듣는다. 그래서 이 부분이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음악에 정답이 없다는 말이 모든 미완성을 취향의 차이나 예민함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장르와 곡의 흐름에 따라 요구되는 기본적인 리듬과 다이나믹이 있고, 전문적인 작업이라면,
눈가리고 아웅하고 그 상황을 어떻게든 변명과 가스라이팅으로 모면만 하려고 할게 아니라 최소한 자신의 얼굴이 되는 결과물을 진정성 있게 스스로 검수하고 책임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자신의 작품에서는 누구보다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당신은 음악에 진심인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성공에 진심인 것인가.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직업인으로서의 진정성은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능력을 믿고 비용을 지불해 작품을 맡겼다면, 그 순간 타인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 사람의 음악적 진정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음악 작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비슷한 모습은 나타난다.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겸손하고 친절하지만, 더 이상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람에게는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어려운 시절 함께했던 사람과 자신을 믿어준 사람보다 현재 자신에게 더 유리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을 우선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영원할 수는 없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에 따라 상대를 존중하는 정도까지 달라진다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겸손하면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행동한다면, 우리가 그 사람의 대외적인 모습만으로 그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오늘날에는 개인의 이야기도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야기,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예술을 지켜온 이야기는 사람들의 공감과 응원을 얻는다.
그러나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세상의 이해와 공감을 바라면서 정작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의 절박함과 작품의 소중함에는 무관심하다면, 그 진정성에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힘들었다는 사실이 타인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반드시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실력과 인격도 언제나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능숙한 사람이 빠르게 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반복적으로 신뢰를 잃은 사람이 다른 곳에서는 계속 새로운 기회를 얻기도 한다. 자신의 행동으로 오래된 관계를 잃으면서도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회를 얻는 능력과 신뢰를 얻는 능력은 다르다.
기회를 얻는 것은 한순간일 수 있지만, 신뢰는 오랜 시간의 행동을 통해 축적된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능력과 좋은 직업인이 되는 것 역시 같지 않다.
그리고 뛰어난 음악가가 되는 것과 신뢰할 수 있는 음악인이 되는 것 역시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은 자신이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을 줄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신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자신의 이름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타인의 작품에도 얼마나 책임을 다하는지.
그런 순간들이 오히려 한 사람의 진정성을 더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
음악에 대한 진정성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지만으로 음악에 대한 진심이 모두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자신의 음악을 믿고 맡겼을 때 혹은 함께 파트너로써 협업하였을때, 그 믿음을 어떻게 대했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변명보다 책임을 선택했는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곳에서도 음악을 음악답게 대했는지.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음악에 대한 진정성’은 자신의 작품이나 성공에 대한 집착에 얼마나 집중하는지가 아니라,
타인의 소중한 작품까지 얼마나 존중할 수 있는지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음악이 아니라는 이유로 당신의 진정성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과연 진정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 사람은, 그 작품을 통해 위로와 공감을 받고 힘을 내며 울고 웃기도 할 사람들에게
아티스트로써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진지하게 다시한번 고민해봐야 할 중요한 주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디자인이든, 창작이든, 악기 연주든, 노래든, 제작이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