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청춘을 이야기하는 노래는 많다. 괜찮다고 말하고, 결국 잘될 거라고 위로하고, 조금만 더 버티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정말 불안한 순간에는 그런 말조차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세상은 계속 앞으로 가라고 재촉한다. 꿈을 가지라고 하지만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날도 있다.
한로로의 음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의 노래는 청춘에게 정답을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는 쉬운 결론도 좀처럼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하면 불안한 채로, 흔들리면 흔들리는 채로 그 감정을 끝까지 바라본다.
그래서 한로로의 음악을 듣다 보면 위로받는다는 느낌보다 먼저 ‘들킨 것 같다’는 기분이 찾아온다.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 청춘
청춘이라는 단어에는 이상할 정도로 밝은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젊음, 도전, 가능성, 사랑, 꿈.
그러나 실제 청춘의 시간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실패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 작은 좌절에도 크게 흔들리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자신까지 의심하게 된다.
한로로는 그런 청춘을 굳이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 안에서는 사랑도 완벽하지 않고 관계도 언제든 흔들린다. 성장에는 상처가 따라오고, 무언가를 얻는 과정에서 다른 무언가를 잃기도 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솔직함 때문에 그의 음악은 위로가 된다.
누군가 “괜찮아”라고 말하는 대신 “나도 이런 마음을 알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조용히 시작해 결국 터져버리는 감정
한로로의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가사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담담하게 흘러가던 음악이 어느 순간 기타와 드럼을 만나 거칠게 팽창하고, 억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때 록은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답답함과 불안, 분노와 슬픔이 기타의 노이즈와 드럼의 타격감 속에서 물리적인 에너지로 바뀐다.
그래서 한로로의 음악은 이어폰으로 조용히 들을 때와 공연장에서 들을 때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혼자 품고 있던 감정이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와 만나면서 개인의 이야기가 집단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다시 록이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입춘’, 아직 봄이 아니어도
한로로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입춘’은 그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기 좋은 출발점이다.
입춘은 달력으로는 봄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실제 날씨에는 여전히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묘한 시간은 청춘과 닮았다.
어른이 됐다고 하기에는 아직 서툴고, 그렇다고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다. 무언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른다.
한로로는 그 애매한 경계의 감정을 포착한다.
그래서 ‘입춘’이 품고 있는 봄은 완성된 봄이라기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계절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로로의 음악에서 희망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존재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 등장하는 거대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아직 춥지만 어딘가에서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작은 징후다.
‘사랑하게 될 거야’,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게 될 거야’에서도 한로로 특유의 감정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랑은 언제나 행복만을 약속하지 않는다. 가까워질수록 상처받을 가능성도 커지고,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할수록 잃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럼에도 사람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
한로로의 음악에서 사랑은 완벽한 구원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에게 다가가면서 만들어내는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선택에 가깝다.
이 감정 역시 청춘과 닮아 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시작하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사랑하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무언가를 믿어보는 것.
한로로가 노래하는 청춘에는 그런 모순이 살아 있다.
왜 지금 다시 록일까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밴드 음악과 록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완벽하게 정돈된 사운드와 짧고 강렬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기타가 거칠게 울리고, 드럼이 밀어붙이며, 사람이 직접 소리를 내지르는 음악에서 새로운 감각을 발견한다.
록에는 매끈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
숨이 차고, 목소리가 흔들리고, 악기가 서로 부딪힌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들린다.
한로로의 음악 역시 모든 감정을 예쁘게 정리하지 않는다. 때로는 문학적이고 때로는 직설적이며, 조용히 속삭이다가 갑자기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그 예측할 수 없는 진폭이 불안정한 청춘의 감정과 묘하게 닮아 있다.
위로보다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조금 더 노력해보라고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감정에 해결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에는 그저 누군가 옆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봐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한로로의 음악이 가진 힘도 여기에 있다.
그는 청춘을 대신 구해주지 않는다. 불안을 없애주지도 않는다. 다만 불안한 사람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 안에 펼쳐놓는다.
“나 역시 흔들리고 있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한로로의 노래에서 록은 반항의 음악이기 전에 생존의 음악처럼 들린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소리라도 질러 밖으로 꺼내놓는 것. 혼자 감당하던 마음을 기타와 드럼에 실어 누군가와 나누는 것.
우리는 흔히 청춘에게 단단해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단단해지는 방법이 아니라, 흔들려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경험인지 모른다.
한로로의 음악에는 그 흔들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직 봄은 완전히 오지 않았고, 사랑은 언제든 끝날 수 있으며,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래도 다시 사랑하고, 다시 노래하고, 다시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불안한 청춘에게 록이 필요한 순간은 어쩌면 바로 그때다.
모든 것이 괜찮아졌을 때가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괜찮지 않은데 다시 한번 살아가고 싶어지는 순간.
한로로의 음악은 그 순간을 크게 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