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어떤 음악은 처음 들었던 순간보다 시간이 흐른 뒤 더 깊게 다가온다. 지나간 사람을 떠올릴 때, 혼자 걷는 늦은 밤,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만은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이해되는 노래가 있다.
밴드 넬(NELL)의 음악이 그렇다.
넬의 대표곡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흔히 ‘기억을 걷는 시간’이다. 그러나 넬의 음악을 조금 더 깊이 따라가 보면 이들의 노래를 관통하는 것은 단순한 이별이나 슬픔만이 아니다. 기억과 상실, 불안과 고독, 그리고 그 감정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의 내면이 오랜 시간 음악 안에 기록돼 있다.
특히 김종완의 섬세한 보컬과 반복적으로 쌓이는 밴드 사운드, 공간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편곡은 넬 특유의 정서를 만들어왔다. 감정을 직접 폭발시키기보다 조금씩 쌓아 올리고, 때로는 비어 있는 공간마저 음악의 일부처럼 들리게 한다.
그래서 넬의 노래는 한 곡씩 떼어 듣는 것과 여러 시대의 음악을 이어 듣는 경험이 조금 다르다.
이번 제이앤엠뉴스 뮤직큐레이션에서는 넬의 음악이 지나온 시간을 따라가며, 오래전의 기억부터 상실 이후 남겨진 감정까지 그들의 음악 세계를 다시 들어본다.
CURATION 01. Stay
초기 넬의 정서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곡이다.
불안정하고 어두운 정서와 몽환적인 사운드, 김종완 특유의 보컬이 만나 이후 넬이 만들어갈 음악 세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누군가를 붙잡고 싶은 마음. 넬의 음악이 가진 고독의 시작점을 만나보고 싶다면 다시 들어볼 만한 곡이다.
CURATION 02. Thank You
제목만 보면 따뜻한 감사의 노래처럼 느껴지지만 넬 특유의 복합적인 감정이 묻어난다.
사랑했던 시간과 끝나버린 관계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고마움과 아픔이 동시에 존재한다. 넬은 이처럼 하나의 감정을 단순하게 규정하기보다 서로 모순되는 감정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순간을 음악으로 표현해왔다.
CURATION 03. 마음을 잃다
사랑이 끝난 뒤 잃어버리는 것은 반드시 상대방만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 속의 자신, 그때 가졌던 감정과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사라질 수 있다. ‘마음을 잃다’라는 제목은 그런 상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넬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CURATION 04. 기억을 걷는 시간
넬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대표곡 가운데 하나다.
이 노래에서 기억은 지나가 버린 과거가 아니다. 지금의 일상 곳곳에 남아 끊임없이 현재로 돌아오는 존재에 가깝다.
특히 일상의 공간과 감각을 통해 떠나간 사람의 흔적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은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기억을 투영할 여지를 남겼다.
그래서 발표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을 걷는 시간’은 특정 세대만의 노래로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이별과 새로운 기억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발견된다.
CURATION 05. 그리고, 남겨진 것들
누군가 떠난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사람이 떠났다고 해서 그 사람과 연결된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간과 물건, 습관과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은 바로 그 이후의 시간을 바라보는 곡이다. 상실 그 자체보다 상실 이후 남겨진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넬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곡이다.
CURATION 06. Ocean of Light
넬의 음악이 언제나 어둠 속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다.
‘Ocean of Light’에서는 보다 확장된 사운드와 빛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에너지를 만날 수 있다. 넬 특유의 공간감은 유지하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방향의 정서를 보여주며 이들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인하게 한다.
‘넬=우울한 밴드’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면 특히 함께 들어볼 만하다.
CURATION 07. Green Nocturne
넬의 음악에서 ‘밤’은 꽤 잘 어울리는 배경이다.
‘Green Nocturne’은 제목에서부터 넬 특유의 색채와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화려하게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소리의 질감과 분위기를 통해 청자를 특정한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는 넬의 장점을 느낄 수 있다.
이어폰을 끼고 혼자 천천히 들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곡이다.
CURATION 08. 시간의 지평선
시간은 넬의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다.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서 되돌아보고, 이미 사라진 관계가 남긴 흔적을 바라보며, 결국 그 모든 것을 품은 채 다시 시간을 살아간다.
오랜 시간 넬의 음악을 들어온 사람이라면 초기 작품과 비교해 달라진 표현과 여전히 남아 있는 넬만의 정서를 함께 느껴보는 것도 흥미롭다.
슬픔을 노래해서가 아니라, 슬픔을 기억하기 때문에
넬의 음악을 흔히 ‘우울하다’고 표현한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이들의 음악에는 슬픔뿐 아니라 사랑했던 순간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잃어버린 뒤의 공허함,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결국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모습까지 담겨 있다.
무엇보다 넬은 오랜 시간 자신들만의 음악적 언어를 유지하면서도 같은 음악을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록을 기반으로 전자음악적인 질감과 공간감 있는 사운드를 받아들이며 시대에 따라 음악의 외연을 확장해왔다.
그래서 20여 년 전의 넬과 지금의 넬은 분명 다르지만, 몇 마디를 듣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넬의 음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오랫동안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온 밴드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끝난 관계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는 것처럼, 넬의 음악도 그렇게 다시 찾아온다.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데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