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팬덤은 음악을 듣는가, 아티스트를 소비하는가

음원·앨범·굿즈·공연까지…K팝에서 음악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제이앤엠뉴스 |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이 나왔다. 팬은 음원을 듣고 끝내지 않는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앨범을 사고, 포토카드를 모은다. 콘서트에 가고 공식 굿즈를 구매하며 팬 커뮤니티에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때로는 한 사람이 같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음악산업에서 팬은 과연 ‘음악’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음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아티스트’를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K팝 산업을 바라볼 때 한 번쯤 던져볼 만한 질문이다.

 

음악 한 곡으로 끝나지 않는 소비

과거 대중음악 산업의 핵심 상품은 비교적 명확했다.

음반이었다.

LP와 카세트테이프, CD를 거쳐 음악을 듣기 위해 소비자는 음반을 구매했다. 가수의 사진과 가사집 같은 요소도 중요한 상품 가치였지만 기본적으로 음반 구매의 중심에는 음악을 소유하고 듣는 행위가 있었다.

 

스트리밍 시대가 되면서 구조가 달라졌다.

이제 한 곡을 듣기 위해 음반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정액제 서비스를 이용하면 수많은 음악에 즉시 접근할 수 있고, 특정 아티스트의 음악 역시 몇 번의 터치만으로 들을 수 있다.

음악에 접근하는 비용과 장벽은 크게 낮아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음악 주변의 소비는 오히려 다양해졌다.

앨범의 여러 버전과 포토카드, 팬미팅, 콘서트, 응원봉, 의류와 캐릭터 상품, 멤버십, 각종 독점 콘텐츠까지 하나의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수많은 상품과 경험이 만들어진다.

음악산업이 음악을 판매하는 산업에서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경험을 설계하는 산업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도 앨범을 사는 이유

스트리밍 시대의 실물 앨범은 특히 흥미로운 상품이다.

음악을 듣는 것만 목적이라면 굳이 CD를 구매할 이유는 과거보다 줄었다. 이미 스마트폰에서 같은 음악을 손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K팝 팬덤에서는 실물 앨범이 중요한 상품으로 기능한다.

 

여기에는 음악 이외의 가치가 결합돼 있다.

앨범 디자인과 사진, 포토카드와 각종 구성품은 수집의 대상이 되고, 특정 버전이나 멤버별 구성은 팬의 선택을 이끌어낸다. 팬사인회나 이벤트 참여 기회가 앨범 구매와 연결되기도 한다.

결국 같은 음악이 담긴 앨범이라도 소비자가 느끼는 상품 가치는 서로 달라질 수 있다.

 

CD가 음악을 담는 저장매체라는 본래 기능을 넘어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상품에 가까워진 것이다.

콘서트에서도 음악만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시장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난다.

콘서트에서 음악은 물론 핵심이다.

 

하지만 팬이 구매하는 경험을 음악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감각, 수많은 팬이 함께 노래하는 순간, 공연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무대와 연출, 응원봉이 만드는 풍경까지 모두 티켓 가격 안에 포함된 경험이다.

 

같은 노래를 집에서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어도 사람들은 공연장을 찾는다.

집에서 음악을 듣는 것과 공연장에서 아티스트를 경험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상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음악에 대한 디지털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물리적인 현장 경험의 희소성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음악보다 아티스트가 먼저인 소비도 생겼다

K팝에서는 음악을 먼저 좋아하고 가수를 찾아가는 전통적인 경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숏폼 영상에서 멤버를 발견할 수 있고, 유튜브 자체 콘텐츠를 보다가 팬이 되기도 한다. 패션이나 광고, 드라마, SNS 활동을 통해 아티스트에게 관심을 가진 뒤 음악을 듣는 경우도 있다.

순서가 뒤집힌 것이다.

 

과거에는 흔히

노래 → 가수 → 팬

이라는 경로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아티스트 → 콘텐츠 → 팬덤 → 음악

이라는 경로 역시 자연스럽다.

음악이 아티스트를 알리는 유일한 출발점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은 덜 중요해졌을까

여기서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제 음악보다 아티스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팬덤 산업이 커질수록 음악은 독특한 역할을 맡는다.

 

굿즈와 영상 콘텐츠, 팬 커뮤니티, 광고 등은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를 확장할 수 있지만, 가수를 가수로 존재하게 만드는 중심 콘텐츠는 결국 음악이다.

새로운 앨범이 나오면 새로운 콘셉트가 생기고, 뮤직비디오와 무대가 만들어진다. 월드투어의 세트리스트가 바뀌고 새로운 굿즈와 콘텐츠가 등장한다.

 

한 곡의 신곡이 거대한 팬덤 비즈니스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셈이다.

따라서 음악의 가치가 줄어들었다기보다 음악의 산업적 역할이 달라졌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음악은 하나의 상품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다른 상품과 경험을 시작시키는 원천 콘텐츠가 됐다.

 

팬덤은 결국 ‘관계’를 소비한다

이러한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K팝 팬덤 소비의 중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관계다.

포토카드를 갖고 싶고, 콘서트에 가고 싶고, 팬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그 중심에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감정이 존재한다.

물론 실제 개인적 관계와 팬덤에서 형성되는 관계감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산업의 관점에서는 팬이 아티스트와 연결돼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접점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제공하는지가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음악은 그 관계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 가운데 하나다.

한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거나 자신의 경험과 가사를 연결하고, 특정 시절의 기억을 한 아티스트의 음악과 함께 저장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정적 연결은 다음 앨범과 공연, 굿즈로 이어질 수 있다.

 

팬덤 경제가 커질수록 생기는 질문

다만 이 구조에는 경계해야 할 지점도 있다.

음악 이외의 상품이 지나치게 중요한 판매 수단이 될 경우 앨범 자체보다 랜덤 구성품이나 이벤트 참여 기회가 구매량을 결정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한 사람이 동일한 음반을 여러 장 구매하는 소비 구조 역시 음악의 실제 청취 규모와 앨범 판매량 사이의 의미를 다르게 만든다.

 

따라서 높은 판매량을 곧바로 그만큼 많은 사람이 해당 음악을 듣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는 어려워졌다.

산업의 성장을 위해 팬덤의 구매력을 활용하는 것과 팬의 충성도를 반복 구매로 최대한 전환하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장기적으로 팬덤 경제가 지속되려면 소비자의 애정을 얼마나 많이 지출하게 만들 것인가뿐 아니라 그 지출에 얼마나 충분한 경험과 가치를 돌려줄 것인가도 중요하다.

 

음악은 상품에서 ‘생태계의 시작점’으로

결국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팬덤은 음악을 듣는가, 아티스트를 소비하는가.

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니다.

 

오늘날 팬은 음악을 듣는 동시에 아티스트를 둘러싼 이야기와 이미지, 공연과 상품, 커뮤니티와 경험을 함께 소비한다.

그리고 K팝은 이 각각의 요소를 하나의 산업 구조 안에 연결하는 데 특히 적극적인 시장이다.

그래서 지금 음악산업에서 한 곡의 가치를 스트리밍 횟수만으로 설명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어떤 음악은 한 번의 재생으로 끝나지만 어떤 음악은 새로운 팬을 만들고, 공연장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앨범을 구매하게 하며, 몇 년 동안 한 아티스트를 따라가게 만든다.

그렇다면 미래 음악산업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이 노래가 얼마나 많이 재생됐는가’만이 아닐 것이다.

 

이 노래를 들은 사람이 그다음에는 어디로 움직였는가.

음악은 여전히 중심에 있다.

다만 이제 음악은 소비의 끝이 아니라, 아티스트와 팬을 연결하는 거대한 생태계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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