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이별을 가장 오래 노래해온 목소리

‘그대 돌아오면’부터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기억상실’, ‘You Are My Everything’까지…R&B에서 발라드·OST로 이어진 거미의 노래들

 

제이앤엠뉴스 | 어떤 가수는 높은 음으로 기억되고, 어떤 가수는 독특한 음색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어떤 가수는 노래에 담긴 감정 자체로 기억된다.

거미의 노래를 떠올리면 유독 이별 장면이 많다.

 

떠난 사람을 기다리고, 헤어진 뒤에 후회하고, 잊으려고 애쓰다가 다시 기억한다. 사랑이 끝난 다음에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감정을 거미는 오랫동안 노래해왔다.

하지만 거미의 음악을 단순히 ‘슬픈 발라드’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2003년 데뷔 당시 그의 음악적 뿌리는 R&B에 가까웠다. 리듬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프레이징과 짙은 음색, 강한 성량을 바탕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방식은 당시 발라드 중심 여성 보컬들과 또 다른 인상을 남겼다.

그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발라드와 드라마 OST까지 영역을 넓혔다.

 

장르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한 가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거미가 노래하면 이야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번 뮤직큐레이션에서는 20년 넘게 이어진 거미의 음악 가운데 그의 목소리가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는 노래들을 골랐다.

 

1. 그대 돌아오면

거미라는 이름을 처음 대중에게 알린 데뷔곡이다.

2003년 발표된 정규 1집 ‘Like Them’에 수록된 ‘그대 돌아오면’에서는 이후 거미 음악의 중요한 특징이 될 짙은 감정선이 이미 드러난다.

 

이별한 상대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하지만 감정을 처음부터 폭발시키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 시작한 목소리가 곡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힘을 얻는다. R&B 특유의 리듬감과 거미의 묵직한 보컬이 만나면서 당시 흔히 들을 수 있던 정통 발라드와는 다른 질감을 만들었다.

지금의 거미를 알고 다시 들으면 오히려 흥미롭다.

완성된 베테랑 보컬 이전, 젊은 거미가 가진 거칠고 짙은 목소리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2.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거미의 초기 대표곡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노래다.

헤어진 뒤 완전히 남이 되어버린 관계를 바라보며 차라리 친구로라도 남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담았다.

이 곡에서 중요한 것은 고음보다 감정의 단계다.

 

처음부터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건네듯 시작한 뒤 곡이 진행되면서 참아왔던 감정이 조금씩 밖으로 나온다.

그래서 마지막의 강한 보컬도 단순한 가창력 과시로 들리지 않는다.

앞에서 쌓아놓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필요한 순간에 터지는 목소리가 된다.

거미가 이후 수많은 이별 노래에서 보여주게 될 방식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기억상실

잊고 싶어서 잊는 것이 아니라 너무 아파서 차라리 기억하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

‘기억상실’은 제목부터 강렬하다.

이 곡에서는 거미 특유의 R&B 보컬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리듬을 밀고 당기는 방식과 음을 연결하는 표현, 거친 질감과 섬세한 소리가 한 곡 안에서 교차한다.

 

특히 거미의 장점은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힘을 언제 사용할지 알고 있다는 데 있다.

조용히 이야기하다가 감정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순간 목소리를 밀어 올린다.

그래서 청자는 높은 음보다 그곳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4. 어른아이

거미의 음악을 이별 발라드로만 기억한다면 다시 들어볼 만한 곡이다.

‘어른아이’에서는 보다 강한 리듬과 그루브가 전면에 등장한다.

거미가 가진 보컬의 또 다른 장점도 여기에서 확인된다.

그는 느린 발라드에서 긴 호흡으로 감정을 끌어가는 데 능하지만 동시에 리듬 위에서 목소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R&B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거미라는 가수의 음악적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곡 가운데 하나다.

 

5. 미안해요

사랑이 끝난 뒤의 감정을 노래하는 거미의 방식은 언제나 상대를 원망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미안해요’ 역시 관계가 끝난 자리에서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본다.

사랑에는 피해자와 가해자처럼 명확하게 나누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좋아했지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떠나고 나서야 상대가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거미의 목소리는 이런 복잡한 감정과 잘 어울린다.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련과 후회, 미안함이 동시에 들린다.

 

6. 죽어도 사랑해

드라마 ‘대물’ OST로 발표된 ‘죽어도 사랑해’는 거미의 목소리가 OST라는 영역에서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 곡이다.

드라마 OST는 일반적인 앨범 수록곡과 조금 다른 역할을 한다.

노래 자체로도 완성돼야 하지만 극중 인물의 감정을 대신 전달해야 한다.

거미의 목소리가 OST에서 강점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장면을 설명하기 어렵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떤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거미에게는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목소리가 있다.

 

7. You Are My Everything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 OST로 발표된 ‘You Are My Everything’은 거미의 음악을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각인시킨 곡이다.

초기의 거미가 R&B 색채가 강한 가수였다면 이 시기의 거미는 이미 발라드와 OST까지 자신의 영역으로 만든 보컬리스트가 돼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음악적 환경이 크게 달라졌음에도 목소리의 정체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 소절이 시작되면 누구의 노래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가수에게 이것은 상당히 큰 자산이다.

기술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몇 초의 목소리만으로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가수는 많지 않다.

 

8.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

드라마 ‘호텔 델루나’ OST로 발표된 곡이다.

이 노래에 이르면 거미의 보컬은 초기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들린다.

무조건 힘을 밀어붙이기보다 문장을 전달하고 여백을 남기는 순간이 더욱 중요해졌다.

20대의 거미와 시간이 흐른 뒤의 거미가 같은 이별을 노래하더라도 그것이 똑같이 들릴 수 없는 이유다.

 

사람의 목소리 역시 시간을 통과한다.

경험이 쌓이고 음악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같은 슬픔도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그래서 오랫동안 활동한 가수의 디스코그래피를 듣는 것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을 듣는 일이기도 하다.

 

거미의 음악에는 유독 눈물이 많다.

그런데 그의 노래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를 단순히 ‘슬퍼서’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헤어진 날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를 들었고, 누군가는 드라마 속 장면에서 ‘You Are My Everything’을 만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 우리는 당시 노래뿐 아니라 그 노래를 듣던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떠올린다.

거미는 20년 넘게 사랑과 이별을 노래해왔다.

 

같은 소재를 반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열아홉의 이별과 서른의 이별이 같을 수 없듯, 같은 ‘사랑’과 ‘이별’이라는 단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의미를 갖는다.

R&B로 출발했던 젊은 보컬리스트는 발라드를 지나 수많은 드라마의 장면을 목소리로 기억하게 만드는 가수가 됐다.

그 긴 시간을 연결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첫 소절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가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또 하나의 오래된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플레이리스트 정보: 유튜브 (URL)

 

 


추천 비추천
추천
0명
0%
비추천
0명
0%

총 0명 참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