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 날 자신이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 많은 시간을 보냈고 여러 일을 해냈다. 그런데 주변을 바라보면 다른 사람들은 저만치 앞에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지나온 시간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오왠(O.WHEN)의 ‘그림자’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하는 노래다.
오왠은 음악 활동을 시작한 뒤 많은 사랑을 받으며 앞을 보고 달려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결과와 성과에 쫓기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그치게 됐다고 이번 앨범을 소개했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신만 어린 시절의 서툰 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은 불안과 자책은 결국 그를 오랫동안 방 안에 머물게 했다.
‘그림자’는 그 시기를 지나고 난 뒤 멋지게 극복한 사람이 들려주는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어두웠던 시절 한가운데 있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꺼낸 기록에 가깝다.
노래에 등장하는 공간과 이미지 역시 화려하지 않다.
까만 하늘과 하루가 끝난 뒤의 노을, 길어지는 밤, 그리고 발밑에 붙어 있는 그림자가 전부다.
그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존재가 그림자다.
그림자는 어디를 가더라도 따라온다.
앞으로 걸어가도 함께 움직이고, 멈추면 함께 멈춘다. 밝은 곳에서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지만 어둠이 깊어지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
오왠은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다.
지쳐버린 하루 끝에서 자신과 그림자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서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 감정은 노래에서 반복되는 ‘자라나지 못한 오늘’이라는 표현으로 모인다.
실제로 사람이 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오왠 역시 음악을 시작한 이후 여러 곡을 발표하고 무대에 서며 많은 시간을 지나왔다.
하지만 비교가 시작되면 성장의 기준은 자신이 지나온 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서 있는 위치가 된다.
누군가는 더 유명해졌고, 누군가는 더 큰 무대에 섰으며, 누군가는 더 많은 숫자를 얻었다.
그 순간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뒤에 있는지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음악가에게 이러한 비교는 더욱 직접적일 수 있다.
음원 순위와 재생 횟수, 공연 규모, 관객 수, 구독자와 팔로워처럼 활동의 결과가 수많은 숫자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숫자는 성과를 확인하는 유용한 기준이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음악을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숫자를 확인하고, 그 숫자가 다시 음악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역설이 생긴다.
오왠이 이번 4부작에서 ‘결과’가 아니라 ‘음악을 해나가는 과정 자체’를 다시 긍정하게 된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하려는 이유도 이와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그림자’는 아직 답을 주지 않는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크게 외치지도 않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위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하루가 끝난 뒤 자신만 남았다고 느끼는 상태에서 노래가 멈춘다.
이 선택은 앞으로 이어질 4부작의 구조와도 연결된다.
오왠은 가장 흔들리고 불안했던 시절에서 출발해 음악을 하는 과정 자체를 받아들이고, 곁을 지켜준 사람들과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변화를 순서대로 들려줄 예정이다.
그 첫 번째가 ‘그림자’다.
새벽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밤이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첫 곡에서는 아직 그림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옆에 서서 함께 걷는다.
이 노래가 개인적인 음악인의 고백을 넘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과에 쫓기는 감정은 음악가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직급과 연봉을 비교하고, 학교에서는 성적과 진학을 비교한다. SNS를 열면 누군가는 결혼했고 누군가는 집을 샀으며, 누군가는 성공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흘러온다.
그 모습을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왜 나는 아직 이 정도일까.
하지만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반대로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림자’는 아직 그 빛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왠이 예고한 네 곡의 여정 가운데 지금은 가장 어두운 첫 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노래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해결이 아니라 질문이다.
자신의 하루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다시 밤을 맞는다.
어쩌면 성장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 자신의 성장일지도 모른다.
매일 조금씩 변하는 자신을 매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림자는 계속 발밑에 붙어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왠의 ‘그림자’는 아직 그 사실을 깨닫기 전, 스스로 멈춰 있다고 믿었던 한 사람의 가장 어두운 밤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밤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첫 번째 곡이 끝났다. 오왠이 예고한 다음 장면은 그림자가 길어지는 밤을 지나 마침내 찾아올 새벽을 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