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씨아, 힘내라는 말 대신 “고개 들지 않아도 괜찮아”…‘너의 발끝에’

망설임과 외로움 앞에 멈춘 사람에게 건네는 다른 방식의 위로…앤씨아가 직접 가사에 담은 ‘기다려주는 마음’

 

제이앤엠뉴스 | 힘든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쉽게 “힘내”라고 말한다.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하고,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라고 한다.

좋은 뜻에서 건네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지칠 만큼 지친 사람에게 다시 힘을 내라는 말은 때때로 또 하나의 숙제가 될 수도 있다.

앤씨아(NC.A)의 ‘너의 발끝에’는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간다.

고개를 들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너의 발끝에’는 망설임과 외로움 앞에서 멈춰 선 사람을 바라보는 노래다. 앤씨아가 직접 가사를 썼으며 hayawn이 작곡과 편곡을 맡았다.

노래가 처음 바라보는 것도 상대의 얼굴이 아니다.

노을빛이 내려앉은 거리에서 무겁게 걸어가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다.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들과 다른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낀다.

외로움의 본질을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혼자일 수 있다.

 

누군가와 같은 공간을 걷고 있어도 자신의 마음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세상과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

앤씨아는 그 벽을 억지로 허물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의 발끝을 바라본다.

제목인 ‘너의 발끝에’가 중요한 이유다.

 

사람은 자신감이 있을 때 앞을 바라보지만 지치거나 마음이 무거울 때 자연스럽게 시선이 아래로 향하기도 한다.

그래서 흔히 위로는 고개를 다시 들게 만드는 것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자체를 잘못된 상태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당장 하늘을 바라볼 힘이 없다면 발끝을 보고 있어도 괜찮다.

 

그 발끝에도 이미 작은 하늘이 다녀갔다고 말한다.

노래 속 자연의 모습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된다.

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눈부심이 있고, 안개 속에도 작은 반짝임이 있다.

여기서 비와 안개는 완전히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비가 그친 뒤에야 빛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비를 지나온 자리에 이미 눈부심이 남아 있고, 앞을 가리는 안개 속에도 빛은 존재한다.

마음이 완전히 괜찮아진 뒤에야 좋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 셈이다.

아직 힘들어도 괜찮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지금의 상태 그대로도 작은 빛은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너의 발끝에’의 위로에는 시간표가 없다.

언제까지 일어나야 한다거나, 내일부터는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곁에 있겠다는 마음이 반복될 뿐이다.

이것은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겠다는 약속과도 다르다.

누군가의 불안과 외로움은 몇 마디 말로 없애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상대를 빨리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자신의 속도로 움직일 때까지 옆에 머물러주는 것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앤씨아가 직접 쓴 가사에서 드러나는 정서도 그런 기다림에 가깝다.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억지로 털어놓으라고 하지 않고, 고개를 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도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는다.

 

앤씨아의 보컬과 hayawn의 음악이 만나는 지점 역시 이런 가사의 방향과 연결된다.

강한 메시지를 앞세우기보다 한 사람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듯 흘러가면서 곡이 말하려는 ‘곁에 있음’ 자체에 무게를 둔다.

우리는 위로를 이야기할 때 종종 상대를 변화시키려 한다.

울고 있는 사람을 웃게 하고 싶고,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

 

하지만 모든 위로가 사람을 당장 일어서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에는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너의 발끝에’가 보여주는 위로가 그렇다.

멀리 있는 희망을 가리키면서 그곳까지 가보라고 말하는 대신 지금 상대가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작은 빛을 찾아준다.

 

그래서 제목은 ‘너의 앞에’도, ‘너의 하늘에’도 아니다.

‘너의 발끝에’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사람에게 하늘을 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발끝까지 하늘을 가져다 놓는다.

 

어쩌면 가장 필요한 위로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말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앤씨아의 ‘너의 발끝에’는 그렇게 상대보다 먼저 걸어가지 않는다.

그저 같은 자리에서,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곁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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