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헤어진 뒤에도 자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함께했던 시간이 상대에게도 특별하게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존재가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에스파파(S.Papa.)가 ‘새벽테잎’ 프로젝트를 통해 컨츄리 꼬꼬의 ‘애련’을 다시 부른다.
이번 ‘애련’은 원곡이 품고 있던 이별과 그리움의 정서를 유지하면서 사운드의 옷을 바꿨다.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중심으로 모던한 블루스 록의 색채를 입혀 오래된 노래를 현재의 밴드 사운드로 다시 해석했다.
‘애련’의 감정은 뒤늦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함께 있을 때는 상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얼굴에 감춰져 있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제라도 그 상처를 자신이 안아주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흘러온 듯하다.
그래서 이 노래의 사랑은 재회를 요구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떠난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매달리기보다, 결국 상대의 기억에 자신이 남지 않더라도 먼 곳에서 지켜보겠다는 마음으로 향한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노래 안에서 충돌하는 것이다.
제목인 ‘애련(愛戀)’ 역시 이런 정서와 맞닿아 있다.
사랑했기 때문에 남아버린 그리움.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다.
이번 리메이크가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감정의 변화를 기타 사운드의 확장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어쿠스틱 기타의 따뜻하고 섬세한 질감으로 노래가 가진 서정성을 살리고, 후렴으로 향하면서 일렉트릭 기타의 거친 프레이즈와 밴드의 다이내믹을 점차 확대한다.
감정은 처음부터 폭발하지 않는다.
뒤늦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조용한 후회에서 시작해, 억눌러왔던 그리움이 점차 커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같은 후렴이 반복될수록 마음도 제자리에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운드는 점점 커진다.
이런 구조는 리메이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래된 노래를 다시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악기를 현대적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원곡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감정을 남겨두면서도 지금 다시 들어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스파파의 ‘애련’은 원곡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애틋함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기타 중심의 블루스 록이라는 새로운 질감을 더하는 쪽을 선택했다.
특히 이번 곡이 ‘새벽테잎’이라는 이름 아래 발표된다는 점도 노래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밤이 끝나기 직전의 새벽은 이상한 시간이다.
어둠은 아직 남아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침이 찾아온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별 역시 비슷할 때가 있다.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까지 동시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하루로 넘어가기 전, 지나간 사람을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남는다.
‘애련’은 바로 그 시간에 가까운 노래다.
사랑을 되찾았다는 결말도 없고, 완전히 잊었다는 해방도 없다.
다만 자신이 기억되지 않더라도 사랑했던 사람의 상처만큼은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미련으로 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마지막 형태로 들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오래된 노래가 다시 불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가 달라져도 이별 뒤에 사람이 겪는 모순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붙잡고 싶지만 보내줘야 하고, 잊고 싶으면서도 잊히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애련’은 그 마지막 욕심마저 내려놓는다.
내가 네 기억에 남지 않아도 괜찮으니, 네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새벽은 결국 끝난다.
그러나 아침이 온다는 사실이 지금의 어둠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않는다.
에스파파의 ‘애련’은 그렇게 아침이 오기 직전, 아직 떠난 사람을 놓지 못한 마음에 잠시 머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