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사람을 잊는 데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한 달이면 충분할 수도 있고 몇 년이 지나도 부족할 수 있다. 달력은 어김없이 다음 계절로 넘어가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컬리스트 란(RAN)의 새 디지털 싱글 ‘이제는 잊혀질 때도 됐는데’는 바로 그 시간차를 노래한다.
제목부터 이미 이별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전제한다.
이제는 지워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은 계절을 보냈고 수많은 밤도 지나왔다. 그런데 기억 속 상대방은 희미해지기는커녕 여전히 선명하다.
그래서 이 노래의 화자는 ‘잊고 싶다’고 말하기보다 왜 아직 잊지 못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시간과 마음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몸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데 마음 한편은 여전히 이별했던 그날에 머물러 있다.
특히 ‘이제는 잊혀질 때도 됐는데’가 그리움을 꺼내는 방식은 거창하지 않다.
기념일이나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우연히 듣게 된 익숙한 노래가 과거를 불러낸다.
별일 없이 지나가던 하루의 한순간에도 한 사람이 갑자기 떠오른다.
실제로 오래된 기억은 이런 방식으로 되살아날 때가 있다.
일부러 떠올리려고 할 때보다 음악이나 냄새, 거리의 풍경처럼 과거와 연결된 작은 자극을 만났을 때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 다시 선명해진다.
그중에서도 음악은 특별하다.
한때 함께 들었던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로 남지 않는다. 그 노래를 들었던 장소와 당시의 감정, 함께했던 사람까지 하나의 기억으로 묶이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같은 노래를 다시 듣는 순간 과거의 감정까지 함께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란의 신곡은 그런 순간을 이별 발라드의 익숙한 문법 안에 담아낸다.
곡은 처음부터 감정을 크게 터뜨리기보다 지나간 기억을 되짚듯 비교적 차분하게 출발한다. 이후 잊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보컬과 멜로디의 감정 역시 점차 커지는 흐름을 따른다.
란은 초반부에서는 감정을 눌러 이야기하듯 노래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그동안 쌓여 있던 그리움을 보다 높은 밀도의 보컬로 끌어올린다.
작곡에는 필승불패와 장석원이 참여했다.
서정적인 발라드의 흐름에서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사운드의 규모를 키우는 구성은 란의 맑으면서도 힘 있는 음색과 맞물린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폭발적인 그리움만은 아니다.
떠난 사람이 자신을 가끔이라도 떠올리고 있을지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이미 관계는 끝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할 방법도 없지만, 그 작은 가능성조차 아직 버리지 못한다.
여기에서 이별한 두 사람의 시간은 더욱 분명하게 갈라진다.
한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앞으로 걸어갔을 수도 있다. 반대로 다른 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현재형일 수도 있다.
같은 사랑을 했다고 해서 같은 속도로 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잊혀질 때도 됐는데’라는 제목에는 그래서 묘한 체념도 담겨 있다.
‘잊어야 한다’가 아니라 ‘잊혀질 때도 됐다’고 말한다.
애써 지우려고 했던 단계를 지나 이제는 시간이 알아서 지워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마음에 가깝다.
그런데도 기억은 남았다.
수많은 계절이 지나고 새로운 하루가 계속 쌓였는데도 어떤 사람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 그대로 마음 한쪽에 머물러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과 그 사람을 다 잊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란의 ‘이제는 잊혀질 때도 됐는데’는 바로 그 간극을 노래한다.
어쩌면 오래된 이별이 유난히 아픈 순간은 계속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분명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평범한 하루 갑자기 그 사람이 다시 선명해질 때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