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오랜만에 새로운 노래를 찾으려고 음악 앱을 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노래인데도 이상하게 내 취향이다.
유튜브를 열어도 비슷하다. 평소 관심 있던 주제의 영상이 첫 화면에 나타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얼마 전 찾아봤던 상품과 비슷한 제품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심지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보다 플랫폼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추천 알고리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생긴다.
나는 원래 이것을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계속 추천받았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 걸까.
과거에도 사람의 취향은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던 노래를 좋아하게 됐고, 친구가 추천한 영화를 봤으며,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책을 골랐다.
방송사가 어떤 음악을 내보내고 극장이 어떤 영화를 상영하며 음반매장이 어떤 앨범을 앞에 진열하는지도 우리가 접하는 콘텐츠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우리의 선택지를 먼저 골라주는 일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 ‘누군가’가 나를 아주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노래를 끝까지 들었는지, 어떤 영상에서 오래 머물렀는지, 무엇을 검색했는지, 어떤 상품을 눌러봤는지와 같은 행동은 디지털 환경에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플랫폼은 이런 신호를 활용해 이용자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은 콘텐츠를 추천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중 하나를 다시 선택한다.
처음에는 분명 내가 알고리즘에게 정보를 줬다.
내가 록 음악을 자주 들었기 때문에 비슷한 록 음악이 추천됐을 것이다.
그런데 추천된 음악을 계속 듣기 시작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내가 록을 듣는다.
알고리즘이 록을 추천한다.
추천받은 록을 다시 듣는다.
알고리즘은 내가 록을 좋아한다는 판단을 더욱 강화한다.
그리고 다음 화면에는 또 록이 등장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디가 시작이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내 취향을 알고리즘이 발견한 것인지,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것인지 말이다.
이 현상은 음악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자동차 영상을 몇 번 보기 시작하면 자동차 콘텐츠가 늘어나고, 여행지를 검색하면 여행 영상과 관련 상품이 따라온다.
쇼핑몰에서 특정 디자인의 옷을 자주 클릭하면 비슷한 스타일이 계속 등장한다.
뉴스 역시 마찬가지다.
관심 있는 주제의 기사를 계속 선택하면 유사한 뉴스와 콘텐츠를 더 자주 접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추천 알고리즘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에는 인간이 직접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콘텐츠가 존재한다.
매일 새로운 음악과 영상, 상품, 뉴스가 쏟아진다.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씩 살펴보면서 내가 좋아할 것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알고리즘은 그 거대한 선택지 가운데 내가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을 먼저 추려준다.
덕분에 평생 알지 못했을 작은 뮤지션의 노래를 발견할 수도 있고, 검색하지 않았던 영화나 책을 만날 수도 있다.
취향의 범위를 넓혀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 방향도 가능하다.
내가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것만 계속 보여준다면 편리함은 어느 순간 익숙함으로 바뀐다.
비슷한 음악, 비슷한 영상, 비슷한 의견, 비슷한 상품을 반복해서 만나게 된다.
싫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추천은 만족도를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만날 기회를 줄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취향이라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반복해서 소비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처음 먹어본 음식이 좋아질 수도 있고, 친구 때문에 억지로 따라간 공연에서 평생 좋아할 뮤지션을 발견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별로였던 노래를 몇 번 듣다가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내 취향이 아닐 것 같은 것’을 만나는 경험이 새로운 취향을 만든다.
알고리즘 입장에서는 이것이 어려운 문제다.
내가 좋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만 추천하면 만족스럽지만 새로움은 줄어든다.
반대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많이 추천하면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가능성은 커지지만 “추천이 왜 이래?”라는 반응을 얻을 수도 있다.
결국 좋은 추천은 내가 이미 좋아하는 것과 아직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것 사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의 취향이 알고리즘에 의해 완전히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도 지나치다.
추천받은 모든 노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첫 화면에 등장한 모든 영상을 누르지도 않고, 쇼핑몰이 보여주는 모든 상품을 구매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선택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
알고리즘은 선택지를 배열하지만 우리는 그중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지나칠지를 결정한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무엇을 볼 것인지부터 이미 어느 정도 선택돼 있다는 사실이다.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수많은 음악과 영상, 상품은 선택의 대상이 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취향은 완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완전히 ‘알고리즘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알고리즘을 만들고, 알고리즘이 보여준 것들이 다시 나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
둘은 계속 서로를 학습한다.
가끔은 그래서 추천 목록에서 일부러 벗어나보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른다.
평소 듣지 않던 장르의 음악을 한 곡 들어보고, 검색창에 전혀 다른 단어를 넣어보고, 알고리즘이 골라준 첫 화면이 아니라 직접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이다.
거기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취향이라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인 동시에 아직 내가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음번 화면에 너무 정확하게 내 취향의 콘텐츠가 나타난다면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이것이 내가 좋아해서 여기 나타난 것인지, 여기 계속 나타났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게 된 것인지.
아마 정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의 취향은 나와 알고리즘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