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가끔 하늘을 바라본다.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 살아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오래전 헤어진 친구들, 어느새 지나가버린 청춘처럼 다시 손에 넣을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할 때도 있다.
김연자의 ‘NEWNIVERSE’는 그 모든 그리움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둔 노래다.
곡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자신은 꿈에서밖에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을 저 별이라면 볼 수 있지 않을까.
별은 이 노래에서 단순한 밤하늘의 풍경이 아니다.
화자와 그리운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일종의 매개체다. 자신은 갈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곳까지 별은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것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인의 이름도,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도 등장하지 않는다.
덕분에 ‘NEWNIVERSE’의 그리움은 특정한 사랑 이야기에서 벗어난다.
누군가에게는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일 수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나 연락이 끊긴 친구일 수 있다.
떠나온 고향을 생각할 수도 있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떠올릴 수도 있다.
사람뿐 아니라 장소와 물건, 기억과 시간까지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노래가 답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자신의 기억으로 빈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이다.
도시의 불빛 아래 홀로 마음을 써 내려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과 불빛으로 가득하지만 화자의 마음은 오히려 한 사람에게 향한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전달할 수 없고, 결국 오래 참아왔던 감정은 눈물이 된다.
여기서 그리움은 단순히 보고 싶은 마음을 넘어선다.
어떤 순간에는 그 사람의 품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품고 있던 아픔까지 모두 잊고 싶다는 마음으로 커진다.
수백 번, 수천 번 하늘에 그려봤다는 표현 역시 그 시간이 짧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별로 돌아간다.
그리운 사람을 자신은 볼 수 없지만 별은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별에 사람의 기억을 겹쳐왔는지도 모른다.
별은 눈에 보이지만 손으로 닿을 수 없다.
멀리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리움과 닮아 있다.
김연자의 목소리는 이러한 정서와 만난다.
오랜 시간 강한 에너지와 무대 장악력을 보여준 김연자에게 이번 노래는 목소리의 힘을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는 곡이다.
감정을 밖으로 폭발시키는 것보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그리움을 하나씩 꺼내놓는 데 무게가 실린다.
작곡팀 알고보니 혼수상태가 함께한 음악 역시 특정한 관계의 서사를 자세히 설명하기보다 듣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도록 감정의 여백을 남긴다.
특히 오랜 시간 노래해온 가수가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점도 ‘NEWNIVERSE’를 조금 다르게 들리게 한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리워할 대상도 함께 늘어난다.
만났던 사람과 헤어진 사람, 살았던 장소와 떠나온 장소, 이루었던 일과 이루지 못했던 일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그리움은 반드시 슬픈 기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때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아름다운 기억이 오히려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NEWNIVERSE’는 그 대상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대신 별 하나를 바라보며 듣는 사람에게 자신의 ‘그 사람’을 떠올릴 시간을 건넨다.
그래서 같은 노래를 들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얼굴이 떠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했던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부모가, 친구가, 고향이,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젊은 날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리움은 어쩌면 잊지 못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한때 정말 소중했던 것이 존재했다는 흔적인지도 모른다.
김연자의 ‘NEWNIVERSE’에서 별은 그 흔적을 바라보는 곳이다.
오늘 밤 그 노래를 들으며 하늘을 바라본다면 저마다 마음속에는 서로 다른 한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볼 수 없어서 더욱 보고 싶은, 아직도 잊지 못한 ‘그 사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