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마침표는 문장이 끝났다는 표시다.
그런데 사랑에서는 마침표를 찍었다고 해서 정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디(Woody)와 보라가 함께한 ‘마침표’는 바로 그 모순에서 시작되는 이별 노래다.
한 편의 영화처럼 이어졌던 사랑이 끝나고 두 사람의 관계에는 분명 마침표가 찍혔다.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고 상대방에게 잘 지내라는 마지막 인사도 건넸다.
그런데 마음은 문법처럼 정확하게 끝나지 않는다.
찢어진 사진 속에서 상대방은 여전히 웃고 있고, 괜찮은 척 살아가는 화자의 하루는 사실 조금도 괜찮지 않다.
‘마침표’가 흥미로운 것은 이별을 붙잡는 노래처럼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화자는 끊임없이 끝내려고 한다.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말하고 더 이상 질척거리지 말자고 다짐한다. 억지로 이어붙여 온 관계를 ‘나쁜 시나리오’에 비유하면서 이제 정말 그만하자고 선언한다.
연락이 와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간 시간도 깨끗하게 잊어달라고 한다.
말만 놓고 보면 이미 이별을 받아들인 사람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단호한 문장 사이로 계속 진짜 감정이 새어 나온다.
상대가 다른 사람의 품에 있는 모습을 보고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다.
결국 감춰왔던 마음은 후반부에서 무너진다.
자신의 세상이 온통 지옥처럼 느껴지고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고백에 도달한다.
앞에서 반복했던 ‘괜찮다’는 태도가 사실 괜찮아지기 위해 스스로에게 되풀이했던 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제목 ‘마침표’는 단순히 이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말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어에 가깝다.
정말 아무 감정도 남지 않았다면 굳이 마침표를 찍겠다고 여러 번 다짐할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끝났다고 계속 확인하는 행동 자체가 아직 마음속에서는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노래 곳곳에 등장하는 영화적 표현도 이러한 감정을 선명하게 만든다.
사랑했던 시간은 하나의 긴 영화가 되고,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는 일은 좋지 않은 시나리오가 된다. 마지막에는 화면이 어두워지는 ‘Fade to black’이 등장한다.
영화라면 화면이 검게 변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현실의 이별에는 엔딩 크레디트가 없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사진은 남고, 함께 갔던 장소와 습관이 남으며 어느 날 갑자기 상대방의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기억이 남는다.
그래서 사랑의 마지막 장면과 그 사람을 정말 잊는 순간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존재한다.
우디와 보라의 조합은 이러한 이별의 양면을 표현한다.
한 사람의 독백으로 끝낼 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두 목소리가 함께 부르면서 ‘우리’였던 관계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특히 ‘마침표’가 말하는 이별은 누군가를 미워해서 관계를 끊어내는 장면보다는, 사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관계를 스스로 놓아주는 과정에 가깝다.
상대방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겠다고 말하는 대목 역시 그렇다.
사랑하기 전에는 서로가 없어도 살아가던 두 사람이었다.
한동안 서로의 세계가 됐지만 관계가 끝난 뒤에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까지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침표’의 마지막은 역설적이다.
노래는 끝까지 마침표를 찍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반복하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사랑했던 시간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이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마침표를 찍는 일이 아니라, 그 마침표 뒤에 더 이상 문장을 쓰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디와 보라는 ‘마침표’를 통해 사랑이 끝나는 순간보다 그 끝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을 노래한다.
한 편의 영화는 이미 끝났다.
화면도 어두워졌다.
그런데 객석에 남은 사람은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우리라는 이야기에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마음속 이야기가 끝나는 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