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율, 착하게 움직이는 태엽이기를 거부하다…‘시계태엽 오렌지’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는 삶과 넘어질 수 있는 자유 사이…“당신이 바라는 대로 살 수 없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초침

 

제이앤엠뉴스 | 틀리지 않는 삶과 틀릴 수 있는 삶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인간다운 삶일까.

누군가 정해놓은 올바른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면 실패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음율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정답처럼 정해진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선택으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노래한다.

곡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태엽’이다.

 

태엽을 감으면 장난감은 움직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스스로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움직임의 방향과 시간은 이미 외부에서 주어진 힘에 의해 결정돼 있다.

음율은 인간의 삶을 이 태엽이 감긴 오렌지에 겹쳐 놓는다.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간다. 모두가 바라는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웃고, 기대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때로는 기계처럼 자신을 움직인다.

그러다 곡은 묻는다.

그것이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이었느냐고.

 

제목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국 작가 앤서니 버지스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1962년 발표된 이 작품 역시 자유의지와 통제라는 문제를 중심에 둔다. 인간에게서 악을 선택할 가능성까지 제거해 강제로 선하게 만든다면 그 사람을 진정한 의미에서 선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음율이 해당 작품을 직접적인 모티브로 삼았는지는 공개된 곡 소개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태엽이 감겨있는 오렌지’라는 직접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곡 전체에 반복되는 선택과 통제, 선과 악, 자유에 관한 언어는 원작이 던졌던 질문과 흥미롭게 맞닿아 있다.

특히 이 곡에서는 ‘나쁜 것’을 선택하겠다는 표현이 반복된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반항적인 선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노래가 말하는 것은 나쁜 행동 자체에 대한 동경이라기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에 가깝다.

 

남들이 옳다고 정한 선택만 강요받는 대신 자신이 선택하고, 실패하고, 부딪히고, 때로는 넘어질 수 있는 삶을 원한다.

그래서 음율이 말하는 자유에는 처음부터 위험이 포함돼 있다.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은 항상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잘못 고를 수도 있다.

넘어질 수도 있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으로 넘어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화자는 그것을 살아 있다고 부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넘어지는 자유’라는 역설적인 감각이 곡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흔히 자유를 원하는 곳에 가고 원하는 일을 하는 긍정적인 상태로 생각한다.

하지만 자유에는 실패할 자유도 포함된다.

 

틀릴 가능성이 없는 삶은 완벽해 보일 수 있지만, 선택할 가능성까지 사라진 삶이라면 인간은 정교하게 움직이는 기계와 무엇이 다른지 질문하게 된다.

곡 소개에 등장하는 ‘멈춰 있던 시간 끝에서 다시 초침이 움직였다’는 문장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다시 움직인다는 것은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시간이 다시 시작됐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다음 계절을 꿈꾸는 한 아이에게 이어진다.

태엽은 계속 돌아간다.

문제는 누가 그 태엽을 감느냐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 타인의 기대,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에 의해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부딪히고 망가지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시계태엽 오렌지’의 화자는 완벽한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착한 사람처럼 자신을 완벽하게 숨길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타인이 원하는 방식으로는 살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완벽함에서 불완전함으로 추락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부터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선택할 권리를 되찾는 이야기다.

 

누군가가 대신 골라준 정답만을 따라가는 삶보다 스스로 오답을 선택하고 넘어질 수 있는 삶. 음율이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말하는 자유는 어쩌면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멈췄던 초침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바람이 부는 방향이 아니라, 때로는 그 반대쪽으로도 걸어가 보려 한다.

태엽은 여전히 감겨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태엽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넘어지더라도 자신의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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