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반드시 어떤 장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일까.
가수 권미래의 ‘Home’에는 정작 집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에게 휩쓸리고, 무너질 뻔하고, 물에 잠길 것 같은 한 사람이 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잊고 있었던 것들을 뒤늦게 바라보면서도 반복해서 “So take me home”이라고 말한다.
곡의 시작부터 화자는 위태롭다.
이번에도 무너질 뻔했다고 고백한다. 모든 것이 떠난 뒤 더 이상 욕심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상대에게서 멀어지려 하지만, 그때마다 상대는 다시 찾아온다.
끝난 관계인데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특히 ‘휩쓸리다’와 ‘물에 잠기다’라는 표현이 반복되면서 사랑은 이 곡에서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흐름처럼 그려진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그 흐름에 몸을 맡겼지만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같은 감정은 자신을 삼킬 수도 있는 것이 된다.
상대의 말도 더 이상 온전히 믿지 못한다.
직접적인 진심 대신 돌려 말하는 상대에게 화자는 “믿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좀 뻔하잖아”라는 짧은 표현에는 그래서 체념에 가까운 감정도 묻어난다.
상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몰라서 괴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깝다.
이어지는 가사에서는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화자는 사랑에 눈이 멀어 무언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돌아본다. 상대는 예쁜 말로 자신의 눈을 가렸고 결국 가장 편한 길을 선택해 곁을 떠났다.
처음에는 사랑에 휩쓸렸던 사람이 이제는 그 사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뒤늦게 바라보기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Home’은 여러 방향으로 읽힌다.
떠난 상대와 함께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모든 상처에서 벗어나 마음이 편안했던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호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또 하나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잊어버렸던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다 보면 자신의 기준보다 상대의 말을 먼저 믿고, 상대의 감정을 살피느라 자신의 마음을 뒤로 미룰 때가 있다.
그 관계가 끝난 뒤에는 사람 하나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맞춰놓았던 일상과 기대,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만들어졌던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흔들린다.
그때 필요한 ‘집’은 과거의 연인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가 아니라 다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Home’이라는 짧고 익숙한 단어가 이 곡에서 여러 감정을 품을 수 있는 이유다.
흥미로운 점은 노래가 상대에게 노골적인 원망을 쏟아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떠난 사람의 선택을 이야기하고 상처를 드러내면서도 감정의 중심에는 상대를 벌하고 싶은 마음보다 자신이 이 관계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놓여 있다.
그래서 “So take me home”이라는 반복은 사랑을 되돌려달라는 요구보다 지쳐버린 사람이 안전한 곳을 찾는 말처럼 들린다.
사랑이 끝난 뒤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함께했던 시간일 수도 있고, 아무 일도 일어나기 전의 과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은 사랑하기 전과 똑같은 자신이 아니라, 그 사랑과 상처를 지나온 뒤에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자신일 것이다.
권미래의 ‘Home’은 그 돌아가는 길을 짧은 언어로 그린다.
누군가에게 너무 깊이 휩쓸려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면, 이별 뒤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사람은 떠난 상대가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이 이 노래가 말하는 또 하나의 ‘Home’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