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앤엠뉴스 | 살까 말까 한참 고민하던 물건이 있다. 가격도 만만치 않고 꼭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며칠 동안 고민했지만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화면에 한 문장이 나타난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조금 전까지는 사야 할 이유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사지 않았을 때 후회할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오늘 지나면 이 가격에 못 사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이 먼저 사버리면 어떡하지.’ ‘나중에 사고 싶어졌는데 없으면?’ 결국 결제 버튼을 누른다. 몇 분 전까지 필요성을 확신하지 못했던 물건인데 ‘마지막’이라는 단어 하나가 결정을 만들어낸 것이다. 온라인 쇼핑을 하다 보면 이런 표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오늘 마감’, ‘한정 수량’, ‘마지막 1개’, ‘타임세일 종료까지 10분’, ‘현재 12명이 보고 있습니다’. 호텔이나 항공권을 검색할 때도 비슷하다. ‘이 가격의 객실이 1개 남았습니다’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조금 전까지 여러 숙소를 비교하던 사람도 예약 버튼 앞에서 마음이 급해진다. 왜 우리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이렇게 약할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무언가를 얻는 기쁨보다 이미 가질
제이앤엠뉴스 | 이미 본 영화가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결말까지 알고 있다. 누가 범인인지도 알고, 주인공이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안다. 심지어 다음 장면에서 무슨 대사가 나올지 기억나는 영화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인공이 위험에 빠지면 또 긴장한다.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손에 땀을 쥐고, 이미 여러 번 본 이별 장면에서 다시 눈물이 난다. 결과를 알고 있다면 긴장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우리가 영화에서 느끼는 긴장감이 단순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데서만 생긴다면 두 번째 관람부터는 재미가 크게 줄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경험은 꼭 그렇지 않다. 오히려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사람도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야기를 ‘아는 것’과 이야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시점을 이미 알고 있어도 그 장면이 가까워지면 몸은 긴장한다. 음악이 달라지고 화면이 어두워지며 등장인물이 위험한 장소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긴장하기도 한다. 첫 관람에서는 “무슨
제이앤엠뉴스 | 오랜만에 새로운 노래를 찾으려고 음악 앱을 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노래인데도 이상하게 내 취향이다. 유튜브를 열어도 비슷하다. 평소 관심 있던 주제의 영상이 첫 화면에 나타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얼마 전 찾아봤던 상품과 비슷한 제품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심지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보다 플랫폼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추천 알고리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생긴다. 나는 원래 이것을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계속 추천받았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 걸까. 과거에도 사람의 취향은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던 노래를 좋아하게 됐고, 친구가 추천한 영화를 봤으며,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책을 골랐다. 방송사가 어떤 음악을 내보내고 극장이 어떤 영화를 상영하며 음반매장이 어떤 앨범을 앞에 진열하는지도 우리가 접하는 콘텐츠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우리의 선택지를 먼저 골라주는 일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 ‘누군가’가 나를 아주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노래를 끝까지 들었는지, 어떤 영상에서 오래 머물렀는지
제이앤엠뉴스 | 처음 가보는 식당을 고를 때 우리는 무엇을 볼까. 메뉴와 가격을 확인하고 사진을 본다. 그리고 상당수는 자연스럽게 별점을 확인한다. 4.9점.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바로 옆 식당도 4.8점이다. 다른 가게를 눌러봐도 4.9점이다. 온라인 쇼핑도 비슷하다. 처음 보는 제품인데 평점은 4.8점이고, 다른 제품 역시 4.7점이나 4.9점이다. 어느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모두가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데 무엇이 더 좋은지는 오히려 알기 어려워졌다. 별점은 원래 선택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다. 수많은 사람의 경험을 하나의 숫자로 압축한다. 직접 가보지 않은 식당, 묵어보지 않은 숙소, 사용해보지 않은 상품이라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실패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온라인 거래에서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의 차이를 줄여주는 일종의 신뢰 장치인 셈이다. 문제는 별점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 숫자를 둘러싼 행동도 달라진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것이 리뷰 이벤트다. 음식을 주문하면 ‘리뷰 작성 시 음료 제공’, 제품을 구매하면 ‘후기 작성 시 적립금 지급’ 같은 안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벤트 자체가 반드시 잘못된
제이앤엠뉴스 | 이어폰으로 듣는 한 곡의 노래를 떠올려보자. 첫 소절부터 마지막 고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숨을 쉬고, 감정이 커지고, 후렴에서 폭발한 뒤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수가 녹음실에서 그렇게 한 번 노래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음반 제작 현장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첫 번째 소절은 세 번째 테이크, 다음 문장은 다섯 번째 테이크, 후렴의 고음은 일곱 번째 테이크에서 가져왔을 수도 있다. 심지어 한 문장 안에서도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다른 녹음일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번 녹음한 테이크 가운데 좋은 부분을 선택해 하나의 최종 보컬 트랙으로 만드는 작업을 일반적으로 ‘컴핑(Comping)’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가수가 노래를 잘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잘 부른 한 번을 고르면 되는 것 아닐까. 녹음에서 말하는 ‘좋은 테이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음정이 정확한 테이크가 가장 감정적인 테이크라는 보장은 없고, 고음을 완벽하게 낸 테이크의 앞부분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다. 같은 가수가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불러도 결과는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테이크에서는 첫 단어의 발음이 좋고,
제이앤엠뉴스 |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우리는 오랫동안 ‘검색’했다. 검색창에 몇 개의 단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웹사이트가 나타났다. 그중 어떤 페이지를 열어볼 것인지는 이용자가 결정했다. 뉴스를 찾았다면 언론사 기사로 들어갔고, 맛집을 찾았다면 블로그나 지도 서비스를 살펴봤다. 전문적인 정보가 필요하면 여러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내용을 비교하기도 했다. 인터넷의 기본적인 정보 탐색 방식이었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이 익숙한 과정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검색어 대신 질문을 입력한다. “제주도 3박 4일 여행 일정을 짜줘.” “노트북을 살 때 어떤 사양을 봐야 해?” “이 정책이 시행되면 내 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생겨?” 그러면 AI는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의 답변을 만들어 보여준다. 이용자는 검색 결과에 나타난 수많은 링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AI가 정리한 답을 먼저 읽는다. 작아 보이는 변화지만 인터넷 산업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기존 검색의 역할은 이용자에게 ‘어디에 정보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데 가까웠다. 검색엔진이 수많은 웹페이지를 정리해 보여주면 이용자는 그 가운데 필요한 사이트를 선택해 이동했다. 검색 결과
제이앤엠뉴스 | 정식 음원이 공개되기 전, 대부분의 청자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있다. 가이드 보컬이다. 작곡가가 새로운 곡을 만들면 악보와 반주만 가수에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대중음악 제작 현장에서는 누군가가 먼저 노래를 부른 가이드 음원을 함께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가수는 이를 들으며 멜로디를 익히고 가사의 흐름과 곡의 구성을 파악한다. 작곡가나 프로듀서가 어떤 느낌으로 노래하기를 원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도 가이드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그렇다면 좋은 가이드 보컬은 어디까지 완성돼 있어야 할까. 음정과 박자가 정확하면 충분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 발매해도 될 만큼 완벽하게 불러야 할까. 흥미로운 것은 가이드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반드시 최종 결과가 좋아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이드 보컬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작곡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악보에는 음의 높이와 길이를 기록할 수 있지만 모든 음악적 뉘앙스를 담기는 어렵다. 같은 멜로디도 어느 음절을 강조하는지, 자음을 얼마나 강하게 발음하는지, 음의 끝을 길게 끄는지 짧게 끊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처럼 들릴 수 있다. 리듬 역시 마찬가지다. 박자에 정확히 맞춰 부르는 것과 비
제이앤엠뉴스 | “저 가수는 노래를 정말 잘한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무엇을 보고 ‘잘한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높은 음을 시원하게 내서일 수도 있고, 음정이 정확해서일 수도 있다. 첫 소절부터 귀를 잡아끄는 독특한 목소리 때문일 수도 있다. 같은 노래를 불러도 가사의 감정을 유난히 잘 전달하는 가수에게도 우리는 ‘노래를 잘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같은 능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래에는 소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는 발성 능력, 그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음색, 그리고 곡의 구조와 가사를 이해해 자신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음악적 해석과 표현력이 함께 작용한다. 좋은 가창을 이야기하려면 이 세 가지를 한 번쯤 나눠볼 필요가 있다. 발성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발성은 목소리를 음악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기술과 관련된다. 호흡과 성대의 작용을 조절하고 음정과 음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필요한 음역에서 원하는 소리를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능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라이브에서는 이러한 기본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녹음에서는 여러 차례의 테이크와 편집을 거칠 수 있지만 공연에서는 한 번의 호흡으로 음악을 이어가야
제이앤엠뉴스 |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이 나왔다. 팬은 음원을 듣고 끝내지 않는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앨범을 사고, 포토카드를 모은다. 콘서트에 가고 공식 굿즈를 구매하며 팬 커뮤니티에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때로는 한 사람이 같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음악산업에서 팬은 과연 ‘음악’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음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아티스트’를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K팝 산업을 바라볼 때 한 번쯤 던져볼 만한 질문이다. 음악 한 곡으로 끝나지 않는 소비과거 대중음악 산업의 핵심 상품은 비교적 명확했다. 음반이었다. LP와 카세트테이프, CD를 거쳐 음악을 듣기 위해 소비자는 음반을 구매했다. 가수의 사진과 가사집 같은 요소도 중요한 상품 가치였지만 기본적으로 음반 구매의 중심에는 음악을 소유하고 듣는 행위가 있었다. 스트리밍 시대가 되면서 구조가 달라졌다. 이제 한 곡을 듣기 위해 음반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정액제 서비스를 이용하면 수많은 음악에 즉시 접근할 수 있고, 특정 아티스트의 음악 역시 몇 번의 터치만으로 들을 수 있다. 음악에 접근하는 비용과 장벽은 크게 낮아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음악 주변의 소비는
제이앤엠뉴스 | 한 곡의 노래가 수백만 번 재생되고 숏폼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거리의 매장에서도 들리고, SNS를 넘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후렴을 마주친다. 그런데 정작 질문을 하나 던져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노래를 누가 불렀을까.” 노래는 알지만 가수의 이름은 모르는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음악 소비 환경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한 곡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과 그 곡을 부른 아티스트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음악과 가수를 분리해 소비하기가 지금보다 어려웠다. TV 음악방송이나 라디오, 음반을 통해 신곡을 접하면 자연스럽게 가수의 이름과 얼굴, 활동 모습도 함께 노출됐다. 음악의 인기가 곧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스트리밍과 숏폼 중심으로 음악 소비의 주도권이 이동하면서 구조가 달라졌다. 틱톡과 릴스, 유튜브 쇼츠에서는 한 곡 전체가 아닌 몇 초에서 수십 초 정도의 특정 구간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이용자는 영상 속 음악을 반복해서 접하면서 멜로디는 기억하지만, 가수의 이름이나 곡의 전체적인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