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앤엠뉴스 | 누군가가 목표를 이루었다는 소식보다 실수를 했다는 뉴스가 더 빠르게 확산되고,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는 이야기보다 논란이나 사고가 훨씬 많은 관심을 받는다.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이슈나 SNS의 인기 게시물을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왜 우리는 타인의 실패에 이토록 쉽게 시선을 빼앗기는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기쁜 일보다 위험하거나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해 왔다. 먼 과거에는 위험을 빨리 인식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능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좋은 소식보다 사고와 갈등, 실패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에 더 쉽게 관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생존 본능만으로는 지금의 현상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 사회에는 또 다른 심리가 작용한다. 바로 비교다. 누군가의 성공은 때로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만들지만, 누군가의 실패는 상대적인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부른다. 타인의 불행이나 실패를 보며 무의식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물론 대부
제이앤엠뉴스 | 조직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일이 몰린다. 맡은 일을 제시간에 끝내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누군가 놓친 부분까지 알아서 챙기는 사람에게 중요한 업무가 주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일을 잘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일이 주어지고, 책임감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몫까지 맡게 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신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상한 질문이 생긴다. 왜 열심히 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또 다른 일이어야 할까. 조직에는 종종 묘한 역설이 발생한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는 높은 기준이 적용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낮은 기준이 적용된다. 평소 일을 잘하던 사람이 한 번 실수하면 “왜 이번에는 제대로 하지 못했느냐”는 이야기를 듣지만, 늘 실수가 잦았던 사람이 무난하게 업무를 마치면 “이번에는 잘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기대의 차이가 평가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누군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조직은 업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결국 누군가는 그 일을 대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대부분 일을
제이앤엠뉴스 | 음악산업에서 ‘함께하자’는 말은 참 자주 등장한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말, 서로가 가진 강점을 합치자는 말,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하자는 말. 음악이라는 일이 본래 여러 사람의 능력이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인 만큼 ‘협업’은 이 산업에서 가장 익숙하면서도 중요한 단어 중 하나다. 하지만 수많은 제작과 유통 현장을 경험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협업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분명 상대방이 하나의 ‘기회’를 가지고 찾아온다. 좋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거나, 가능성이 있는 아티스트와 작업하고 있다거나,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와 업계 경험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가다 보면 이야기가 묘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완성된 프로젝트의 유통을 맡기겠다는 이야기였는데 어느 순간 제작비 이야기가 등장한다.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함께 부담해달라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상대방이 대부분의 자금을 부담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전제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투자에 따른 권리와 수익배분을 이야기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용
제이앤엠뉴스 |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진정성’이라는 말을 한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수많은 어려움에도 자신의 작품을 지켜왔다는 이야기, 돈이나 성공보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까지. 그러한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음악을 향한 한 사람의 오랜 열정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음악산업의 현장에서 몇몇사례들을 지켜 보면 때때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음악에 대한 진정성은 자신의 작품을 대할 때만 존재해도 되는 것일까. 자신의 작품을 만들 때는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집요하게 고민하고, 연주 하나와 소리 하나에도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조금의 부족함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사람이 비용을 받고 타인의 작품을 맡으면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기본적인 연주 오류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결과물이 전달되기도 하고, 음악의 리듬과 다이내믹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끝났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작업자가 조금만 더 집중해서 모니터링했다면 발견할 수
제이앤엠뉴스 |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다 보면 누구나 실수한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어쩌면 실수의 횟수가 아니라 그다음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에는 좀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자신이 먼저 무례한 말을 했는데도 상대가 예민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상대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반복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도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면 오히려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갈등의 원인은 언제나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왜 그럴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대신 상황 자체를 다르게 해석한다. "내가 그렇게 행동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상대가 먼저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이
제이앤엠뉴스 | 우리는 어려서부터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은 사람의 조건이라고 배웠다. 실제로 배려와 친절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다른 장면을 마주한다. 늘 양보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일을 떠안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이용당한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쓴 사람이 오히려 상처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도대체 왜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 이유는 착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함과 희생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문화에 있다. 배려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에서 빛난다. 하지만 일방적인 희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균형을 무너뜨린다. 내가 계속 참고, 계속 맞춰주고, 계속 양보하는 관계는 언젠가 반드시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배려가 반복될수록 상대가 그것을 '고마움'이 아니라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미안해, 부탁 좀 해도 될까?"라고 말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 부탁은 권리가 되고, 배려는 의무처럼 변한다. 관계가 무너
제이앤엠뉴스 | 우리는 언제부터 결과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을까. 시험에서는 몇 점을 받았는지가 중요하고, 회사에서는 얼마의 실적을 냈는지가 먼저 평가된다. 스포츠는 승패로 기억되고, 콘텐츠는 조회 수와 구독자 수로 가치를 판단받는다. 어느새 과정은 참고사항이 되었고, 결과는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이 됐다. 물론 결과는 중요하다. 사회는 성과를 통해 발전하고, 노력은 결국 일정한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문제는 결과가 중요해진 것이 아니라, 결과만 중요해졌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오랜 시간 실패를 반복한 끝에 단 한 번의 성공을 이뤄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수없이 도전했지만 끝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 담긴 고민과 성장보다 마지막 결과 하나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문화는 교육 현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생이 얼마나 성실하게 준비했는지보다 시험 성적이 먼저 이야기되고, 직장에서는 협업 과정이나 책임감보다 숫자로 나타나는 성과가 우선시된다. 과정이 보이지 않는 평가 방식은 때로는 더 큰 노력을 가려버리기도 한다. 성과 중심 문화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
제이앤엠뉴스 |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완벽한 사람도 없고, 늘 옳기만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건강한 관계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에 의해 유지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보다 누군가를 탓하고, 상황을 합리화하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주변에는 갈등이 반복되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본인은 그 이유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질투해서.' '운이 없어서.' '주변 사람을 잘못 만나서.' 원인은 늘 밖에 있다. 자신만 예외다. 이런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자신의 감정에는 민감하지만 타인의 감정에는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상대가 얼마나 배려하고 참고 있는지는 보지 못한 채, 자신이 원하는 것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려 한다. '오늘 힘든 일이 있었겠지', '원래 성격이 저런가 보다'라며 한 번 더 양보하고, 한 번 더 맞춰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배려가 반복될 때 시작된다. 배려는 감사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
제이앤엠뉴스 | 우리는 언제부터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계산기를 꺼내는 사회가 되었을까. 누군가를 만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이 사람을 만나면 내게 어떤 이익이 있을까." 반대로 관계가 어려워질 때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이유로 등을 돌리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간관계가 마음보다 손익계산으로 움직이는 시대다. 물론 합리적인 판단은 필요하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할지 고민하는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능력이다. 문제는 합리성이 어느 순간 사람보다 앞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든 관계를 투자와 회수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자산'이나 '도구'가 된다. 최근 사회에서는 '가성비', '효율', '실속'이라는 단어가 삶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문화는 소비를 넘어 인간관계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다. 함께하는 시간보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중요해졌고, 진심보다 인맥의 가치가 먼저 평가되며, 대화보다 명함의 무게가 관계를 결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지나친 계산이 결국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예민한 존재다. 상대가 진심으로 다가오는지,
제이앤엠뉴스 |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를 평가하며 살아간다. 첫인상을 통해 상대를 가늠하기도 하고, 행동을 보며 성격을 추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판단 자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지 과정이다. 문제는 그 판단이 사실로 둔갑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상대를 충분히 알기도 전에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는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단정이 제3자를 거치며 이야기의 살이 붙고, 어느새 확인되지 않은 루머로 변해버린다는 점이다. 악의적인 소문은 대부분 명확한 근거보다 추측에서 시작된다. "그럴 것 같다", "누가 그러던데", "왠지 그런 사람 같아"라는 모호한 말들은 반복될수록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결국 당사자는 아무런 해명 기회도 없이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서 평가받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설명한다. 한 번 형성된 인상은 이후 들어오는 정보마저 그 인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 결국 사람들은 진실을 찾기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더욱 쉽게 믿게 된다. 더 안타까운 것은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