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싱어송라이터 이가연은 지난 10년의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속도로 음악을 이어온 아티스트다. 영국 유학과 해외 공연 경험을 바탕으로 무대와 창작에 대한 시선을 확장해왔으며, 노래를 넘어 강연, 글쓰기, 타로 콘텐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감정에서 출발한 음악, 그리고 ‘사랑’을 중심에 둔 태도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고, 지금의 이가연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가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시간과 음악 (10년의 흐름)
Q. 싱어송라이터로서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크게 변한 것’과 ‘끝까지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드디어 제 오랜 꿈이었던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는 점이에요. 늘 세계를 무대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는데, 그 꿈에 한 단계 다가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올해는 호주 시드니에서 펍 공연에 참여하였는데요. 영국이든 호주든 영어권 국가라면 어디든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끝까지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걸 참 좋아한다는 점이에요.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중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생 진로 멘토링 시간에 실용음악과에 대해 강연하곤 했는데요. 그만큼 노래 뿐만 아니라, 강연도 꾸준히 해왔거든요.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아요.

Q.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자신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음악을 대하는 태도나 기준에서 어떤 차이를 느끼시나요?
-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확고하게 갖게 되었어요. 중고등학생 당시에는 반대가 엄청 심했어요. 주변 어른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명 실용음악학원들에서도 ‘보컬이 아니라 작곡을 해라, 뮤지컬을 해라’ 하며 보컬만은 반대를 했어요. 저는 작곡도 좋아하고, 뮤지컬도 좋아하지만, 나의 모든 열정과 애정을 다해 하고 싶던 건 보컬이었어요. 사람들이 보컬만은 안 된다고 할수록, 제 마음은 너무 뜨거워졌어요.
이미 저는 매년 학교 축제 참여로 학교에서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노래로 유명했는데, 아직도 왜 그렇게까지 어른들이 반대를 했을까 안타까워요. 아무래도 경쟁률 때문이죠. 제가 지원했던 학교 중에는 경쟁률 570대1도 있었거든요. 평균 300대1이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에게 독기를 만들어주었어요. 안 된다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그 마음이 참 대단했어요.
결국 저는 보컬 석사까지 학위를 취득하였고, 10년 동안 진득하게 노래를 해오고 있죠. 이제는 그런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겠어!’와 같은 독기가 사라지고 훨씬 편안한 마음이에요. 노래하는 순간 행복하고, 듣는 관객 분들도 제 노래로 인해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지신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어요.
Q. 1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한 선택이나 전환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 실제로 영국에 체류했던 기간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은 제 인생의 2막을 열었어요. 미국, 스페인, 영국 중에 어디로 가야 할까 유학 전에 혼자 일일이 다 답사를 다니며 신중하게 고민했었는데요.
영국을 선택한 것에 참 감사함을 느껴요. 나라 자체가 음식 빼고 저와 참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영국인들은 “sorry”와 “thank you”를 입에 달고 살아요. 카페나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더라도, 말 끝마다 “lovely”를 하기도 하구요. 버스에선 항상 모두가 버스 기사님에게 “thank you” 하고 말하고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타는데, 그런 문화를 참 좋아하고 그리워해요.
영국에선 한 번 외출하면 “sorry”를 스무 번은 하고 오는 기분이라, 아직도 저는 길거리에서 갑자기 부딪히면, 상대방이 저에게 달려와 부딪힌 것임에도 “sorry”가 튀어나올 정도예요. 하지만 한국은 누가 제 발을 밟고도 사과를 하지 않으니, 처음엔 괜히 돌아왔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천국을 너무 짧게 경험하고 온 기분이었어요.
흔히 사람들이 영국 날씨에 대해 오해가 있지만, 사실 한국보다 1년 중 날씨 좋은 날이 훨씬 더 많아요. 비도 흩날릴 뿐이라서, 집에 우산 없는 사람도 있고요. 다만 겨울에 해가 굉장히 빨리 져요. 3시 반부터 해가 지기 시작해서, 4시면 이미 밤이에요. 날씨보다 그 점이 더 우중충했어요. 그렇게 완전히 다른 환경을 경험한 것이, 저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가’는 영국 학교에서가 아니라 영국 길거리 버스커에게 배웠어요. ‘내 노래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는 영국에서 알게 되었던 한 사람에게 배웠어요. 그 덕분에 2025년에 미니 1집을 발매할 수 있었어요. 미니 앨범 발매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싱글을 발매하기 시작한 때부터 꿈이었어요. 그런데 싱글이 아닌 미니 앨범부터는, 기획사가 있어야만 발매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었죠.
하지만 싱글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꼭 묶어서 내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니, 미니 1집을 발매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미니 1집 발매도 참 좋은 전환점이 되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방법만이 길이 아님을 알게 되었죠. 앨범 자켓 사진도 영국의 라벤더 팜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저에게 의미가 있는 장소예요.

2. 환경과 씬 (한국 vs 영국 인디씬)
Q. 한국과 영국에서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하시며 가장 크게 체감한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경계가 없다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영국은 더욱 아마추어도 부담 없이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라 보는 저도 행복해졌어요. 한국에서 오픈마이크와 서양에서 오픈마이크 개념이 다른데요. 현재 한국에서는 오픈마이크여도 아무나 참가할 수 없어요. 미리 신청을 받고, 페이가 없음에도 선발되기 어렵죠. 요즘엔 뮤지션에게 참가비를 요구하는 곳들도 생겨났더라구요. 사실 코로나 전까지는 잘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근래 들어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해요.
영국, 호주에서 오픈마이크는 말그대로 누구에게나 오픈이에요. 매주 수요일에 오픈마이크가 열리는 펍이라고 하면, 그냥 수요일 그 시간에 가서 이름을 적으면 끝이에요. 도착한 순서대로 이름을 적고, 순서에 맞춰 3곡 정도 부르게 되어요. 매주 와서 부르는 사람도 있다 보니, ‘여기가 진짜 음악 커뮤니티다’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20대부터 70대까지 펍에서 맥주를 들고 음악을 즐기는 문화, 그게 참 생각만해도 좋아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흐뭇해져요. 어떤 경우에는 2030대보다 50대부터 70대까지가 더 많은 경우도 있었어요.한국엔 그런 장소를 찾아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Q. 두 나라의 음악 생태계 속에서 아티스트가 살아가는 방식은 어떻게 다르다고 느끼셨나요?
- 영국은 아무래도 밴드의 나라다보니, 밴드가 아닌 여성 솔로 뮤지션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영국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저만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Q. 영국에서의 버스킹, 공연, 페스티벌 경험은 아티스트로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 저는 영국 사우스햄튼 도시를 제 2의 고향처럼 생각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만큼 살면서 처음 느낀 깊은 감정들을 많이 겪게 해주었거든요. 특히 작년 Music In The City 페스티벌은, ‘계속 이 사우스햄튼 도시 커뮤니티 일원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그 페스티벌 이후로, 저는 영국 전역에 있는 페스티벌에 지원하고,
나아가 미국, 일본과 같은 다른 나라 페스티벌도 도전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런 도전들이 참 즐거워요. 불합격 이메일을 받더라도, 그다지 상처받지 않아요. 계속해서 지원하는 제 모습 자체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Q. 이러한 환경의 차이가 창작 방식이나 음악 스타일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 영국 유학을 처음 시작했을 때엔, 영국에서 한국어 자작곡 노래를 부르는 것이 괜찮을까, 그냥 팝송을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제가 어떤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느냐에 있단 걸 깨달았죠.
영국은 아무래도 관객들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노래 전에 가사 소개를 해요. 그 이후로 아무리 한국에서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도, 곡 소개를 미리 들으면 가사에 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으니 꼭 하는 편이에요.
3. 창작과 내면 (싱어송라이터의 시선)
Q. 본인의 음악은 주로 어떤 순간에서 시작되나요?
감정, 이야기, 혹은 특정 이미지 중 어떤 것이 출발점이 되나요?
- 저는 늘 터질 것 같은 감정에서 시작이 되어요.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을 추구해요.
Q. 스스로를 창작자로 바라봤을 때, 가장 지키고 싶은 감정이나 태도는 무엇인가요?
- 사랑이요.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져도 사랑을 지키고 살고 싶어요.
4. 음악 너머 (다른 분야와의 연결)
Q. 유튜브, 공연,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계신데,
이처럼 음악과 다른 분야를 연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원체 관심사가 다양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게 있으면 일단 하고 있어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일단 하는 태도가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든 것 같아요. 지금은 사주 명리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는 이걸 해서 뭘 해야겠다는 걸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할 줄 아는 게 많아진 거 같아요. 삶의 원동력은 당장의 즐거움이에요.
저는 외국어 공부하는 것도 참 좋아해요. 총 6개 국어를 하고 있어요. 여담이지만, 일본어, 중국어하고 스페인어, 불어는 동시에 공부하면 머릿 속에서 조금 헷갈려요. 어제 스페인어를 했는데, 오늘 불어를 하면 자꾸 머릿속에 단어가 스페인어로 먼저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시기마다 들여다보고 있는 외국어가 달라요. 일본어, 중국어까지는 프리토킹이 가능하고, 스페인어, 불어는 아직 공부가 많이 필요해요.
Q. 앞으로 음악과 다른 영역을 결합해보고 싶은 시도가 있다면요?
- 저는 현재 타로 상담사이기도 한데요. 유튜브 ‘타로하는 뮤지션’을 통해 음악과 타로를 결합하여 사람들과 만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기도 했구요. 라이브 방송에서는 종종 노래를 부르기도 해요. 타로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아무래도 예술적이시고, 감수성이 풍부하셔서, 제 노래도 많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저는 타로를 단순히 미래를 예언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아요. 나 자신에 대해 발견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제 타로 영상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내가 나로 살 수 있도록, 꿈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음악과 같은 길이라 생각해요. 음악도 사람들에게 따스한 감동을 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요.
또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영국 생활을 바탕으로 ‘영국에서 찾은 삶의 멜로디’라는 에세이를 출판하기도 했는데요. 요즘은 시 쓰기에도 재미가 들렸어요. 시를 쓰면서, 모든 싱어송라이터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아티스트로서 ‘음악을 넘어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습니다!

5. 지금, 그리고 앞으로
Q. 지금의 본인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 늘 배우고 도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Q. 앞으로의 음악에서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변화나 도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더 다양한 국가, 도시에서 노래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생각지도 못했던 무대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어요.
Q. 해외 활동, 특히 영국을 비롯한 다양한 무대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예전부터 라디오, 드라마 OST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었는데, 꼭 기회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영국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로 활동한 경험도 있는데요. 한국에서 더 많은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10년의 시간을 지나온 이가연은 여전히 ‘사랑’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로 남기를 바란다. 더 넓은 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으로 확장되어 갈 예정이다.























